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1806년 7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은 친나폴레옹 성향의 서남부 [[독일어권]] 국가들을 모아 '''[[라인 동맹]]'''을 결성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의 세력은 독일 중부까지 미치게 되었고 이는 북독일의 강자였던 [[프로이센 왕국]]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원래 프로이센은 프랑스에 적대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때도 상황이 프랑스에게 기우는 게 보이자 가장 먼저 [[프랑스 제1공화국|프랑스 혁명정부]]를 인정하고 전쟁에서 빠졌으며,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제3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가 군사 통행권을 요구했을 때도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등 전쟁속에서도 중립을 지켰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제국]]의 설득에 선전포고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연합군이 처참하게 격파당하자 곧바로 프랑스에게 축하 사절을 보내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제3차 대불 동맹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이 붕괴하고, 나폴레옹이 [[라인강]] 일대의 국가들을 모아 라인 동맹을 형성하면서 프로이센의 세력권을 침범해오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정적인 것은 '''하노버 문제'''였는데, 프로이센이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열정적인 러브콜을 어정쩡하게 무시하며 중립을 지킨 것은 프랑스가 전쟁에서 중립을 지켜주면 [[영국]]의 동군연합인 하노버 선제후국을 할양하겠다고 약속했고, 또 그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영국과의 평화 협정을 맺기 위해 지배자인 프로이센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하노버를 영국에게 반환하겠다는 이야기가 돌자 안 그래도 라인 동맹 등으로 심기를 거스르던 프랑스에 대해 프로이센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프랑스의 무자비한 행보를 지켜봤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당시 막 전성기를 누리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부담스러워 했으나, 루이제 왕비와 루트비히 페르디난트 왕태자의 강력한 설득으로 결국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전쟁을 결심했다. 결국 1806년 8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에게 동맹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내며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고, 프랑스와 적대하던 대영국 선박 금지령을 해제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프랑스 동맹에 동참했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완벽하게 격파된 상황에서 참전하기에는 최악의 시기라고 할 수 있었지만, 프로이센에게는 나름대로, 아니, 상당한 자신이 있었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남겨준 최강의 [[프로이센군]]을 가졌다는 군사 국가로서의 자부심과 이를 뒷받침하는 170,000명이라는 프랑스 [[대육군]]에 비견되는 숫자의 군대가 그 근거였다. 문제는 선전포고를 감행하기는 했으나, 정작 프로이센군이 나폴레옹과 싸울 준비는 조금도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로이센군은 100년 전만 해도 프리드리히 대왕의 지휘 아래 유럽 대륙 최강의 군대로 이름을 알렸으나,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7년 전쟁]]으로 인한 장교단의 손실이 회복되지 않았고, [[농노]]제의 폐해로 인해 산업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프로이센군은 질적으로 프리드리히 대왕 당시보다 저하되어 있었으며, 무기의 수요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융커 중심의 프로이센 사회 특성상 직위는 실력이 아닌 연공으로 정해졌는데, 이때문에 샤른호르스트 같은 유능한 장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귀족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프로이센군의 문제점은 곧바로 나타났는데, 일단 군을 동원은 했지만 프랑스 군과 충돌할 때까지도 어떻게 싸우겠다는 작전 계획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1806년 9월 26일, 프로이센은 독일 내에서 모든 [[프랑스군]]이 철군하지 않으면 프랑스와 전쟁을 감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이미 나폴레옹은 9월 25일에 [[파리(프랑스)|파리]]를 출발한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